젊은 시절의 여행과 휴식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형식이나 내용을 조금은 달리하기도 한다. 어느 친구들의 모임에서, 오로지 그 상황이나 한 순간의 간절함으로 동해의 푸른 바다로 한달음에 달려가, 맛있는 회 한 접시와 얼큰한 매운탕을 곁들인 소주 한잔, 또는 전망 좋은 카페의 따뜻한 커피 한잔이 여행과 휴식이 될 수도 있으며, 정해진 일정과 내용을 사전에 꼼꼼히 준비하고 실행하도록 계획을 세워서 여행하는 것도 휴식의 일면인 것 같다.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 또는 만족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로지 개인의 기준과 판단에 맡기고 휴가를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며, 여행을 마친 후에 의미 있는 휴가로 기억에 남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다만 요즈음의 추세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며, 재미있게 즐기면서 체험하는 오감만족의 시대이며, 코로나의 팬데믹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해야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34년 지기 대학친구인 우리들은 10여 년 전 부터 각자의 취미생활 중 오토캠핑을 함께하는 것을 시작으로 1년에 몇 차례의 여행을 같이하게 되었고, 2021년의 한여름 구례여행도 그 연장선이었다.
내가 휴가철 여행 시 즐겨 숙박지로 검색하고 예약하는 곳이 고즈넉하고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자연휴양림......그 중에서도 ‘ 숲속의 집’이다.
산림청누리집(숲나들e : https://www.foresttrip.go.kr/)에 등록되어있는 164개(국립 43개, 공립 11개, 사립 10개)의 휴양림대부분이 지역명이나 산 이름으로 휴양림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유일하면서도 독특하게도 구례의 휴양림은 ‘산수유자연휴양림’이었다.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으로 산수유자연휴양림 근처에는 산수유마을과 산수유사랑공원이 있고, 이곳에서는 3월이면 샛노란 산수유 꽃이 만발하고 산수유꽃 축제가 열린다. 아울러 휴양림으로 진입하는 2개의 산길 옆에 위치한 구례수목원도 온갖 야생화와 수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다.
휴양림으로부터 20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지리산호수공원’은 지리산과 호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멋진 풍경을 자랑하고 캠핑장과 다양한 수상놀이도 가능하다. 아울러 인근의 치즈랜드와 자연드림파크에서는 체험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나와 친구들은 더운 날씨에도 치즈랜드 전망대를 오르고 넓게 펼쳐진 목초지를 걷고, 시원한 풍경이 어우러진 소나무 군락과 호수를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휴식동안, 잠깐의 목초지에서는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하는 노랑나비 한 마리가 풀잎에 앉아 휴대폰 사진으로 예쁘게 촬영하는 행운도 있었다.
학창시절 대학생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던 나는 미국 CNN이 2018년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아름다운 50곳에 소개된, 충북 옥천의 용암사에서 수계(受戒)를 받았다. 그때 받은 법명이 일정(一淨)이었다. 마음속 단 하나의 깨끗함을 지닌다면 능히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바르게 삶을 살아 득도할 것을 축원하신 비구니 스님의 가르침도 함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여행일정에는 유독 사찰방문이 많았고, 구례는 지리산권역으로 꽤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찰이 많았다. 특히 삼국시대 창건한 화엄사는 넓은 경내와 함께 사사자석탑 등 국보와 보물이 많아 볼거리가 많았고, 작은 소로길에서 바라보는 기와지붕의 전각과 구름, 화사한 여름 꽃의 향연은 그야말로 사진으로 남기기에 금상첨화였다.
신라 중기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전국 제일 사찰로 승격된 천은사는 넓은 주차장과 함께 한여름임에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특히나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에 자리한 호수와 수홍루의 그윽한 정취는 4계절 모두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며, 특히나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 친구들은 천은사를 지나 푸르른 숲속의 임도를 시원한 그늘에서 1시간가량 산책하는 여유로운 시간도 가졌다.
여행일정에는 있었지만 가보지 못한 오산의 ‘사성암’은 다음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천은사에서의 생각보다 긴 산책과, 셔틀버스를 이용해야만 방문이 가능한 약간의 불편함과, 버스 하차 후 무더위에 2km를 다시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백제 성왕때 연기조사가 창건하였고 4명의 성인(원호, 의상, 도선, 진각)이 수도하여 사성암으로 불리고 있으며, 기암절벽에 지어진 독특한 건축양식과 드라마 ‘추노’와 영화‘군도’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친구들과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은 잔상처럼 계속 남았다.
이번 여름여행의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는 인기 TV프로그램으로 방영된 ‘윤스테이’의 촬영지였던 ‘쌍산재’였다.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라 알고 있었고,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우연히 본 사진속의 쌍산재를 보고 한눈에 반했기 때문에 방문하면 꼭 실제로 가보고 싶었으며,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했던 곳이었다.
코로나로 숙박은 불가능하고 입장료(1만원)을 내면 웰컴 드링크(차와 아메리카노 선택)를 받고 관람하면 된다. 곳곳에 관람할 수 있는 곳과, 쉴 수 있는 공간, 차 마시는 공간, 사진 찍을 수 있는 명소가 많아 한여름의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었으며 가을이나 겨울에 방문해도 한껏 운치가 있을 것 같은 멋진 곳이었다.
TV에서 보던 익숙한 대나무 숲길과 바람소리, 그리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기와지붕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까지, 보고 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명소였고,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되어있어 여행객들에게 충분히 추천할 만했다.
‘쌍산재’로부터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는 ‘운조루’는 가난한 이웃들이 언제든지 쌀을 퍼갈 수 있게 했던 타인능해(他人能解) 라는 뒤주가 잘 보관되어 있고, 조선 영조시대 류이주가 금빛의 거북이 진흙에 묻혀있다는 “금귀몰니”의 길지에 세운 99칸의 대저택답게 약간은 고즈넉했다. 사유지인 만큼 코로나로 일부 출입이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지만 쌍산재에 이어 가깝게 있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옛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구례여행 첫날이었던 7월 11일(일)은 초복이었다. 닭띠라서 닭요리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산닭구이로 유명한 ‘당골식당’은 미리 예약하지 못해 다음날 예약해서 맛보는 등 구례의 음식은 풍성하고도 맛있어 몇 군데 추천해 보고자 한다.
‧ 당골식당 : 지리산 야생의 토종닭을 직접잡아 코스(닭 육회 → 구이 → (삶은 뼈) → 닭 죽 순서)로 나온다. 맛이 담백하고 별미로 즐길만하다. 다만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
‧ 동아식당 : 읍내에 위치해있고 가오리(간재미)찜에 부추를 풍성하게 올려 나오며, 양념장에 찍어, 산수유 막걸리와 먹으면 그만이다. 주인장 부부의 인심이 후하다.
‧ 중동구판장 : 휴양림 인근에 있는 시골마을의 작은 슈퍼로, 명칭은 구판장이지만 가마솥에 튀겨주는 치킨(닭 튀김)이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다. 예약은 필수이며 닭발도 원형그대로 튀겨주는 곳이다.
‧ 진일기사식당 : 예정에 없이 점심을 먹게 된 식당. 순천 선암사 가는 길 좌측에 있다. 개인적으로 충남 홍성의 ‘내포기사식당’, 충북 진천의 ‘손맛한식뷔페’처럼 가성비가 으뜸인 집이다.
여행이후에 친구들은 2021년 여름, 우리가 겪었던 구례의 멋진 풍경, 평화로운 시골의 정취를 추억삼아 가끔 이야기한다. 그리고 3년 이내 다시 가기로 약속했다. 그때는 미처 들르지 못한 피아골과, 노고단, 성삼재, 섬진강 자전거길 탐방이 계획되어 있다.
여행은 누구와, 어디를, 어떻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로 변화된 추억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방문할 구례는 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