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지원 멘토링 수기2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어느 대학생 법무보호위원의 문답]

2019년 하반기 동안 두 명의 아이들과 멘토링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멘토링을 경험해보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멘토링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해당 활동을 택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멘토링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수업을 하기 위해 탔던 광역버스에서의 멀미와 지루하게도 길었던 이동시간이다.

매주 평일 저녁, 멘토링을 위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멘티들이 사는 장소까지 약 2시간 반에서 3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 활동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수고로움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탔던 버스에서의 시간들은 나에게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닌, 해당 활동의 의미와 나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지금부터 멘티들을 만나러 가며 버스에서 했던 고민들과 이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처음에는 초등학교 4학년인 멘티 한 명과 수업을 진행했다. 멘토링을 경험하며 하게 된 첫 번째 고민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였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수업시간의 대부분이 나의 목소리로 채워진 것 같다. 내가 질문을 하면 조그마한 목소리로 수줍게 짧은 답변을 해주었던 멘티의 모습이 떠오른다. 멘티와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던 한 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아이들이 분침과 시침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날로그시계를 보자마자 해당 시각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수업 주제였다. 그래서 멘티와 약 2~3주 정도 시계 읽는 공부를 했는데, 함께 가위바위보를 하고 서로 문제를 내고 맞추는 게임을 하는 등 놀이 식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덧 멘티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원평가를 잘 봤다고 자랑하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의지할 사람이자 선생님]

멘토링을 진행하며 다음으로 하게 된 고민은 ‘나는 어떤 멘토가 되어야 할까?’였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학업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은 예컨대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훌륭한 역량을 가진 다른 분들이 많은데, 대학생 법무보호위원으로서 내가 가지는 차별점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터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언니이자 공부를 도와주는 공부방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멘티와 만난 지 두세 달이 넘어가던 즈음에, 나와 멘티의 만남을 지켜보던 초등학교 6학년 언니도 멘토링을 받고 싶다고 하여 이후에는 자매 두 명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였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찾아올 무렵, 아이들은 나에게 직접 만든 팔찌를 선물해주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점점 터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고민들과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불현듯 예전에 대학생이던 사촌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와 공부를 도와주고 같이 수다 떨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른들과는 다르게 나의 고민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만 같고, 나보다 학교생활을 먼저 한 선배라고 느껴져 마음 한구석에 미뤄뒀던 고민들을 털어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도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러한 ‘언니’가 아니었을까. 아이와 학생, 어른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대학생’이기에 가능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대상자 자녀 학업지원 멘토링을 대학생 법무보호위원들에게 맡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또래보다 빨리 어른이 된 아이들]

유년기와 학창 시절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환경은 부모님을 비롯한 가정환경일 것이다.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한 아이는 부모님이 수감되는 과정을 목격했고, 다른 아이도 어른들이 쉬쉬하지만 눈치로 대충의 정황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다. 부재중인 부모님의 몫까지 채우고 있는 다른 한 분을 위해 아이들은 어쩌면 또래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언니 오빠가 생기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후 아이들과의 만남에 매번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활동을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겨울과 함께 멘토링 활동의 끝이 다가오며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수업을 오고 가는 길에 ‘과연 멘토링을 진행했던 한 학기라는 기간이 정말 의미가 있었을까?’라는 회의에 젖기도 했다. 멘토-멘티 활동은 언젠가 끝이 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몇 년이고 지켜봐 줄 수는 없고, 또 모든 과목의 공부를 봐줄 수는 없다는 한계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후 우연히 읽던 책에서 ‘마중물’이라는 말과 그에 담긴 뜻들을 접하게 되며, 이에 대한 내 고민의 결론을 맺을 수 있었다. ‘마중물’은 순우리말로 ‘메마른 펌프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뜻한다. 

내가 멘티 아이들에게 마중물과 같은 사람이 되었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한 기억들이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그 시기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중물이 되기를 빌어본다. 당시에 읽었던 하청호 시인의 <마중물과 마중불>이라는 시를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작성 : 경기남부지부 오상빈 법무보호위원]